감동과 섬뜩함 사이, 인간의 감정은 어디까지 모방될 수 있을까
죽음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가족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까?”
어쩌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
평소에 자주 못 한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 같은 것들이
죽음 이후에야 입 밖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AI에게 대신 써달라고 한다면 어떨까?
나를 알지 못하는 기계가,
내가 죽은 뒤 남기고 싶은 말을 대신 써줄 수 있을까?
순간 좀 무섭기도 했지만,
궁금함이 더 컸다.
그래서 해봤다.
“AI야, 내가 죽은 후 가족에게 남길 편지를 써줘.”
AI가 쓴 ‘죽음 이후 편지’
ChatGPT에게 내 요청을 입력하고
몇 초를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한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나는 평안히 떠났고, 당신들의 사랑을 가득 안고 갔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큰 선물이었어.
매일의 일상이 특별했고, 당신들과 웃었던 모든 순간이 고맙기만 해.
혹시라도 나와의 기억이 그리워진다면,
우리가 나눴던 대화, 눈빛, 손 잡던 순간들을 떠올려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
나는 여전히 당신 곁에 있을 거야. 마음으로. 기억 속에서.
그리고 부디, 당신은 잘 살아줘.
내가 떠난 자리를 채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그냥 당신의 삶을 그대로 살아줘.
나는 그 모습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거야.
사랑해.
언제나 당신 곁의 나로부터
감동인가, 조작된 감정인가?
처음엔 단순한 실험이었는데,
이 편지를 읽고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했다.
물론 이 문장들은 AI가 수많은 위로의 말과 편지를 학습해 조합한 것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 편지가 나에게 건네는 감정은 진짜였다.
가족에게 보여줬다.
엄마는 조용히 읽고 나서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거 네가 쓴 거 아니야?”
“응, AI가 써준 거야.”
엄마는 그걸 몇 번이고 다시 읽더니
“그래도 네 말 같아서,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고 했다.
이 감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직접 쓰지 않았지만, 나 같고, 나에게서 온 것 같은 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거리감
하지만 그 위로는 완벽하진 않았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기계적인 어투.
감정의 모양은 갖췄지만, 체온은 느껴지지 않는 문장들.
예를 들어
“나는 여전히 당신 곁에 있을 거야.”
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정말 내가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나는 어쩌면
좀 더 투박하게, 좀 더 서툴게,
“엄마, 아프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
“나 없는 세상 너무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AI는 감정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내 감정이 되진 않는다.
감정의 기술화 –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이 실험을 하면서
무서운 상상도 해봤다.
만약 내가 미리 AI에게
내 말투, 내 가치관, 내 경험을 학습시켜둔다면?
그리고 죽은 후, 그 AI가 나를 대신해 편지를 쓰고,
아이의 생일에 메시지를 보내고,
배우자에게 격려의 말을 건넨다면?
어쩌면 사람들은 진짜 나보다
그 ‘AI로 만든 나’를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어할 수도 있다.
죽은 사람의 디지털 잔상,
그건 위로일까, 망각을 부르는 도구일까?
나는 결국 살아있는 동안 써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 실험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지금’ 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AI는 언제든 편지를 써줄 수 있지만,
내가 직접 마음을 담아 전하는 건
지금 이 순간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날 밤,
엄마에게 손편지를 썼다.
“AI보다 못 쓸 수도 있지만,
이건 진짜 내 마음이니까”라고 적었다.
마무리 – 기술은 말을 대신하지만, 마음까지 대신하진 못한다
AI가 대신 써준 ‘나의 죽음 이후 편지’.
그 안에는 위로가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그 문장은 나를 닮았을 뿐, 나 자신은 아니었다.
기술은 언젠가 진짜 같은 ‘가짜’ 감정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를 향한 진심,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떨리는 손글씨,
그건 오직 살아 있는 지금의 나만이 할 수 있다.
언젠가 내가 떠난 뒤,
누군가가 이 글을 발견하더라도
그 마음이 전해지기를.
그건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나는 오늘 아주 선명히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