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윤리 문제, AI 판단의 한계 등
인공지능(AI)은 점점 더 많은 판단과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람 대신 물건을 추천하고, 질병을 진단하고, 계약서를 검토하며, 심지어 자동차를 운전하기까지 하죠. 그런데 여기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AI도 도덕적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AI가 생명을 구하거나, 공정한 결정을 내리거나, 피해를 줄이는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철학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미 실제 상황에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는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까요? 그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AI의 도덕성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자율주행차의 딜레마: 생명을 선택해야 할 때
AI 윤리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자율주행차의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종종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라고도 불리는 이 논의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앞에 다섯 명의 보행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를 피하려면 차를 옆으로 꺾어야 하는데, 그 방향에는 한 명의 보행자가 있습니다. 이때 AI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섯 명을 살리고 한 명을 희생시킬까요, 아니면 그대로 직진할까요?
이 문제는 단순해 보이지만, '누구의 생명이 더 소중한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자율주행차가 사람을 피하려다 운전자를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보행자보다 탑승자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죠. 이런 결정에는 인간 사회의 가치관과 도덕 기준이 깊이 얽혀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AI는 스스로 윤리 기준을 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 기준을 프로그래밍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른 책임 소재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개발자일까요? 자동차 회사일까요? 탑승자일까요? 이처럼 자율주행차의 판단은 기술적 문제만이 아니라 윤리적, 법적 책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AI의 도덕적 판단이 어려운 이유
AI가 인간처럼 도덕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도덕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도덕이나 윤리는 시대와 문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용인되는 행동이 다른 나라에서는 비도덕적으로 여겨질 수 있죠. 예를 들어, 일부 국가에서는 안락사가 합법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엄격히 금지됩니다. 이런 상대적인 도덕 기준을 AI에게 학습시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2) AI는 감정이나 공감을 갖지 못한다
도덕적 판단에는 단순한 규칙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거나,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AI는 정서적 판단 능력이 없습니다. ‘왜 그런 선택이 옳은지’보다는 ‘어떤 선택이 통계적으로 유리한지’를 계산할 뿐입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상황의 맥락과 인간다움을 반영하지만, AI는 그 맥락을 이해하거나 반영하지 못합니다.
3) 결과 중심적 사고의 한계
많은 AI는 '어떤 결과가 더 나은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가장 적게 나오는 선택을 한다거나, 평균적인 만족도가 높은 방향을 택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윤리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존재하죠. 아무리 전체적으로 유리하더라도, 누군가를 고의로 희생시키는 선택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AI가 이런 절대적 윤리 기준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역할: 도덕은 위임할 수 없는 책임
결국, AI에게 도덕성을 부여하는 것은 AI 자체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책임 문제입니다. 인간은 AI가 어떤 기준에 따라 작동할지를 설계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며, 결과를 점검하는 주체입니다. 다시 말해, AI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선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가 윤리적 기준을 먼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최근 AI 윤리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UNESCO)에서는 "AI 윤리 권고안"을 채택해, 인간 중심의 AI 개발과 활용을 강조했고, 유럽연합(EU)은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규제와 투명성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논의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AI 윤리 헌장을 통해 인간 존엄성과 사회적 신뢰를 지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죠.
하지만 이러한 법과 규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도덕은 법보다 앞서야 하며, 더 섬세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개발자는 단순히 "정확한 알고리즘"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기준을 고민해야 하고, 사용자는 AI가 내놓은 결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수용할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마치며: 기술의 진보보다 중요한 것
AI에게 도덕성이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은 아니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AI가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그 기술이 어떤 세상을 만들지는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도덕은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값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꾸준히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사회적 합의의 산물입니다. AI의 도덕성은 결국 인간의 도덕성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먼저 도덕적이라면, AI도 조금씩 그 방향을 닮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